이 글은 나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며, 하나의 믿음이나 이론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창조주가 아니며, 그저 경험한 것을 담담히 전할 뿐입니다.
독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읽고, 필요한 만큼 받아들이면 됩니다.
글은 아직 진행 중이며,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입니다.
매일 몸은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마음은 나를 버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길을 걷거나, 밥을 먹거나, 일을 하면서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단순한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지는 상태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는 이미 명상의 초보적 단계를 넘어, 무한대 입장과 형태의 몸을 가진 중간 정도의 의식으로 나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살아있는 우주인 나’를 보았고, ‘모든 가능성의 초점’을 확인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나, 그 자기중심적 모습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세상과 모든 인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았고, 나의 우주에게조차도 미안함이 가슴을 가득 채웠습니다.
어느 날, 직장 책상에 앉아 있던 중이었습니다.
문득, 가슴이 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그 투명함은 점차 온몸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육체가 사라지며 드러난 것은
오직 하나의 마음—‘우주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말로는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깊은 기쁨과 환영의 파도로 나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습니다.
이것은 인간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전체로서의 사랑**, **존재 그 자체로서의 환대**라는 것을.
‘아, 이것이 신의 마음이구나.’
그리고 그 마음은
어디 먼 곳이 아닌, 바로 **내 안에** 있었습니다.
점점 그 범위가 커져 몸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았지만, 그 순간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리며 체험은 멈췄습니다.
나는 온종일 그 충만함과 놀라움 속에 있었습니다. 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그 마음은 여전히 나와 함께했습니다.
어떻게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만약 신이 웃는다면, 이런 모습일까요?
만약 신이 장난스레 구른다면, 그것도 이런 모습일까요?
내 안의 신이 가려진 커튼을 열고 얼굴을 내밀 때, 바로 이런 모습일까요?
나는 너무 기뻐서 퇴근 후 곧장 명상 센터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이 체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시큰둥한 얼굴로 “좋은데… 빵 터졌어야지. 완전히 몸이 없어졌어야지…”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맞아, 내가 완전히 없어졌어야 했는데. 왜 멈췄을까?’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러나 그때 내 안의 신의 마음이 나를 기쁘게 반겨주는데, 그 순간까지도 내가 계속 울면서 버티기만 했어야 했을까요?
그런 마음들이 교차하면서, 선생님이 원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냥 잘하고 있으니 계속하라’고 말해주셨다면, 내 마음은 조금 더 안정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실망스러운 마음 때문에 며칠간 명상이 잘 되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나를 천천히 버려나갔습니다.
아쉬운 마음 때문인지, 나는 상상으로 그 순간을 다시 그려보았습니다.
내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모든 세상은 단 하나의 ‘우주의 사랑’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머리로만 그려보는 내 모습이 처량했습니다.
그러던 중, 내 안의 ‘남은 필름 마음’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마주하며 더 깊은 버리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국 선생님의 말에 느낀 서운함마저도, 나를 한층 더 깊은 버리기로 이끄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인간과 달리 하늘은 그렇게도 절묘하게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두 분의 사례를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아는 한 고위 공무원은 몸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 무려 6개월을 보냈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일상에서도 얼마나 치열하게 정진을 하셨으면 그런 체험을 하셨을까요?
그분은 그 6개월을 “혼란의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을 할 때면 소리가 어디서 터져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고,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에 국을 떠도, 도대체 어디로 넣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리고 그걸 넣으면, 몸이 없으니 후루룩~ 하고 아래로 다 흘러내릴 것만 같았어요.”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매 순간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느껴집니다. 산속의 수도승도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이런 체험을 이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혼란이었을까요?
또 다른 분은 변호사였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일 명상에 몰두하며, 늘 깨어 있으려 애쓰셨습니다.
그분도 눈을 뜬 상태에서 몸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특히 어느 날, 아주 중요한 재판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재판장 안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차례로 지워나갔다고 합니다.
판사, 검사, 피고, 원고, 방청객들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까지.
그렇게 모두를 비워내자, 남은 것은 오직 ‘신의 마음’뿐이었다고 말해주셨습니다.
그 마음으로 변론을 이어갔고, 결국 그날 재판에서 승소를 하셨다고 합니다.
자기라는 존재는 결국 자기 몸만한 의식 속에 갇혀 있는 마음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필름 마음이죠.
그러나 그 몸은 가짜 마음이 만든 허상의 테두리이기에, 몸이 없어지면 오직 ‘본성의 마음’만 남아 그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참, 혹시 오해하실까봐 덧붙입니다. 몸이 없어진다는 것은 실제로 외부 사람이 보기에 투명인간처럼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 어딘가엔 그런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체험담에서 말하는 ‘몸이 없어진다’는 것은 본인만 아는 것입니다.
몸의 모든 형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의식만 남게 되는 순간을 뜻합니다.
다음 글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