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의 여동생이 신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어릴 적엔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냈지만, 성인이 된 후 각자의 삶에 바빠 교류가 끊겼고, 서로를 미워했던 감정도 솔직히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앓아온 데에는, 동생과의 얽힌 사연도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 어느 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거의 말이 없었고, 웃지도 않았다. 눈을 아래로 내리고 내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지만, 그 시선은 고요하고 편안했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고, 그것을 귀가 아니라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부처나 성모 마리아, 예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걷고, 차를 마셨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지나도록
그녀는 나를 왜 찾아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래 알고 지낸 언니가 조심스레 말했다.
“너, 어디어디 좀 가봐. 네 동생이 거길 다녀왔대.”
나는 종교나 도(道)에 깊이 끌린 적이 없었다.
멀리서 조용히 관찰하는 정도로만 접하고 싶었고, 내 삶 안으로 들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내가 찾아간 곳은 작은 가정집 같은 공간이었다.
명상 선생님은 나에게 기본 이론을 설명했지만, 나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당신의 삶을 모두 기억해내고, 그것을 버리세요.”
나는 이왕 온 김에 시키는 대로 했다.
살면서 내 인생의 필름을 여러 번 보았고,
내 안에 악마성이 있다는 것도,
화이트홀에 빠지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던 것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엔 '정리' 차원에서 '나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훅— 차원을 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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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나였다
정말로 무한대, 무한대, 무한대 — 그 자체인 우주가 바로 나였다.
신이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 신이 거했다.
(※ 여기서 말하는 '신'은 특정 종교의 신이 아니라, 모든 의식의 원형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주 전체가 살아 있는 하나의 의식이었고, 나는 바로 그 의식이었다.
우주 말고 다른 모든 것은 허상이었고, 그 허상은 우주에 속한 적조차 없었다.
그곳에는 소리도 없었고, 색도 없었고, 냄새도 없었다.
크기도, 빛도, 파장도, 진동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도 없었고, 공간도 없었다.
시작도 끝도 없었으며, 모든 ‘개념’은 무의미했다.
나는 본래부터 우주였고,
우주가 아닌 적이 없었고,
삶도 죽음도 경험된 적 없었으며,
‘인간의 관념’은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우주는
세상에서 가장 맑고 투명했다.
어둠과 투명함이라는 구분조차 무의미했다.
이것 자체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이 감동을 어떻게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우주인 나는,
무한한 의식의 바다 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창조 놀이를 했다.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이미 그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창조’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았다.
존재와 의도의 경계가 없었다.
그곳의 속도, 그 존재 방식은
인간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언어로는 결코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 체험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고,
그것이 훨씬 더 진짜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육체라는 형태에 갇혀 살아간다.
무엇을 위해, 누구로서?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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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지도하던 선생님은
명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차원을 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늦은 저녁, 나는 그곳을 나왔다.
그 순간, 하늘에서 말도 안 되게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처럼 퍼부었다.
나는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었다.
그리고 울었다.
너무 울어서 길바닥에 주저앉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통곡했다.
화이트홀.
어릴 적부터 나를 괴롭혀 온 그 꿈.
나의 삶의 필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수히 흔들렸던 순간들.
공간이 말을 걸어오고,
태양이 “집에 가자”고 손짓하던 기억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비와 함께
나는 나의 정답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겨우 시작이었다.